- "새집줄게 헌집다오"
20년 넘게 토박이로 살고 있는 주택가에 어느 날부터인가 아파트를 짓는다는 개발이야기가 들려온다. 오래된 단독주택가에 개발을 추진하는 세력이 들어오고 특정주민이 나서면서 아파트 개발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개발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주민들에게 “우리가 아파트를 지을 수 있게 일부 돈만 받고 당신 소유의 땅과 건물을 우리에게 넘겨주면 우리가 당신 소유의 땅에 아파트를 새로 지어 당신에게 아파트를 무상으로(또는 아주 저렴한 가격에) 주겠다.”고 유혹한다.
주민들 중 워낙 오랫동안 익숙해져 있는 내 동네, 내 이웃, 내 집이 좋아 그냥 현재처럼 살고 싶은 사람들, 혹은 세를 놓아 월세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은 망설이기도 한다. 하지만 아파트를 지으면 재산적 가치가 몇 배로 뛴다는 말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조건이라면 내 소유의 땅과 건물을 개발업자에게 내놓기로 하고 유일한 삶의 터전을 개발업자들에게 넘겨주는 매매계약서를 써준다.
개발업자들이 매매계약서에 “아파트를 무상으로 공급하겠다거나 아주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겠다”는 특약사항까지 친절하게 수기로 써주는데다가,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만한 건설회사까지 나서서 시행사와 함께 ‘아파트 공급확인서’까지 써주니 땅과 건물을 내놓는 주민의 숫자는 점점 더 늘어간다.
이제 주민들은 아파트를 공급받기 위해서 시행사와 건설회사가 아파트를 공급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하는 절차에 순순히 따라가게 되고, 아직 실체도 존재하지 않는 ‘가칭’ 지역주택조합에 조합원으로 가입한다는 서류를 제출한다. 개발업자들은 그 즈음부터 주민들을 ‘일반조합원’과 구분하여 ‘지주조합원’이라고 부르고, 지주조합원도 ‘토지출자조합원’(무상공급조건)과 ‘토지매매조합원’(유상공급조건)으로 나눠서 부른다.
그런데 조합이 설립되고 사업시행인가가 난 뒤부터 조합, 시행사, 건설회사는 “금융비용을 포함한 사업비용이 예상외로 발생하였고, 부동산경기침체 여파로 일반조합원 모집 등 아파트 분양이 잘 안되어 지주조합원들이 수천만 원의 분담금을 내야 한다.”고 말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금액은 불과 몇 달 사이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으로 바뀌고, 지금 빨리 그 수억 원의 분담금을 분할해서 내지 않으면 금융비용 등 사업비용이 점점 더 늘어나서 분담금은 나중에 눈덩이처럼 불어난다고 주민들을 협박한다.
이때부터 주민들은 일대 혼란에 빠져든다. 내 땅을 매매대금도 다 못받고 순순히 사업에 사용하라고 내놓았고, 매매계약서에 특약사항도 받았고, 시행사와 건설회사로부터 ‘아파트공급확인서’까지 받았는데 왜 이제 와서 이렇게 많은 돈을 내놓으라고 하는지, 그럴 수도 있는 것인지, 이런 법이 어디 있는지 의아해한다.
그런데 시행사와 건설회사는 애초의 말과는 달리 “당신들은 조합원이므로 비용을 분담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만 내세우니 의아함을 넘어 불안하고 분통이 터져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주민들의 머리와 몸은 쇠약해지고 노인분들은 병세가 악화되기도 한다.
이제 부랴부랴 주민들은 변호사를 찾기 시작한다. 그러나 변호사들의 의견이 분분하거나 불확실한데다가, 괜히 소송을 제기했다가 분담금 연체료만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못받은 매매대금도 날라 가버리고 아파트도 날라 가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 때문에 주민들은 쉽사리 소송도 제기하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사건해결의 핵심으로는 접근하지 못하고, 조합장과 시행사대표, 건설회사를 상대로 사기, 배임으로 형사고소를 하였다가 무혐의 처분을 받는 좌절감만 맛보고, 그 이후에는 “사업비용이 왜 이렇게 늘어났는지, 그 늘어난 사업비용이 부풀려진 것은 없는지 자료를 공개하라”고 하거나 “분담금을 낮춰달라”고 하면서 조합과 시행사 사무실, 건설회사를 찾아가 항의하고 데모를 해본다.
그러나 별다른 성과가 없자 한 사람, 두 사람 개별적으로 소송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이는 우리나라 지역주택조합사업 전반에 공통되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는 많은 부동산전문가들이 “지역주택조합사업은 실질적으로 시행사와 건설회사가 모든 사업을 주도하고, 존재하지도 않던 조합을 자신들이 구성함으로써 일개 수분양자에 불과한 조합원에게 명목상 사업주체의 일원이라는 허울을 씌워 자신들이 져야 할 위험부담을 조합원들에게 모두 떠안기는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고 이미 지적하고 있는 진부한 줄거리다.
그런데 시행사와 건설회사가 조합이 설립되어 있지도 않은 상태에서 토지매수작업을 하면서 사실상 조합원을 모집하는 것은 주택조합이 아니면 조합원을 모집할 수 없도록 금지하고 있는 주택법위반의 소지가 크다고 지적되고 있고, 따라서 그와 같은 경위로 추진되는 지역주택조합사업은 그 형식을 불문하고 시행사와 건설회사가 모든 사업에 관한 위험부담을 져야하는데, 아직까지 현실은 그런 방향으로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는 앞으로 법조인과 부동산전문가, 그리고 정치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풀어가야 할 커다란 숙제며, 토지매입과 사업수지분석, 그리고 사업추진을 좌지우지하는 사업관계자들이 깊게 성찰해야 할 심각한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