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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환변호사/보도자료

법원 "전기밥솥으로 매수한 동의서는 무효" [파이낸셜신문/2011-09-26]

법원 "전기밥솥으로 매수한 동의서는 무효"
파이낸셜신문 2011년 09월 26일자 - [인터넷뉴스기사보기] 

파이낸셜신문 9월 26일 28면

 
 지역주택조합이 총회 개최 전 조합원들에게 30만원 상당의 밥솥을 제공하는 대가로
부당하게 받은 서면동의는 무효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3부(재판장 이우재 부장판사)는 서울 사당동지역주택조합(이하 조합) 조합원 고모씨 등 54명이 "밥솥을 주는 조건으로 서면결의서에 찬성한 만큼 총회 결의는 무효"라며 조합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25일 밝혔다.

■홍보요원, 선물 미끼 서면결의서 

법원 및 관련업계에 따르면 사당동 171번지 일대에 대한 공동주택 건설사업을 목적으로 설립인가를 받은 조합은 2007년 LIG건설을 공동사업주체 겸 시공사로 선정했다. 이곳은 이수역 리가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으로 현재 공사 중이다. 

조합은 2008년 6월 임시총회를 열고 당초 추가분담금 없이 새로운 주택을 공급받기로 한 단독조합원(단독주택 제공하고 조합 가입)과 연립조합원(연립주택 제공하고 조합 가입)들에게 5500만원씩 추가분담금을 부담키로 하는 결의를 하고 지난해 3월 조합원 가입계약서를 새로 작성했다. 

조합은 이로부터 7개월 만인 지난해 10월 임시총회를 열어 한 차례 추가분담금에 더해 단독조합원은 2억3000여만원, 연립조합원은 2600만원을 추가 부담한다는 안건을 결의했다. 

이 과정에서 조합과 LIG건설은 홍보요원을 동원, 서면결의서 찬성란에 기표를 해주면 30만원 상당의 전기밥솥을 기념품으로 주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결국 조합 측은 조합원 238명 가운데 146명(찬성 126명, 반대 20명)으로부터 서면결의서를 받았다. 고씨 등은 "조합 측이 총회 전 홍보요원을 고용, 서면결의서를 매수한 만큼 총회 결의는 무효"라며 소송을 냈다.

■"절차상 하자, 총회결의 무효"

재판부는 "결의자가 토론 전 미리 자신의 의사를 정했더라도 토론을 통해 결의 내용을 변경하는 것은 토론이나 회의체 결정의 핵심적인 존재가치"라며 "따라서 서면결의서를 제출했더라도 제출자가 이를 철회, 총회에 참석해 토론을 거쳐 직접 의결권을 행사하고자 할 때는 총회 방해 등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제한해서는 안 되며 위반 때는 총회 결의 자체를 무효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홍보요원들이 명시적으로 찬성란에 기표할 것을 강요치 않았다 해도 서면결의서를 작성하지 않으면 재산상 손해를 입게 된다거나 조합원 대부분이 찬성했다고 말한 점 등에 비춰 사실상 서면결의서 찬성란 기표를 강요한 것이라고 인정된다"고 덧붙였다.

조합원이 서면결의서에 직접 서명·날인한 경우라도 조합원의 의사가 왜곡 반영됐다고 인정되는 경우 서면결의서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재판부는 '밥솥을 제공한 것은 의사정족수 부족에 따른 총회 무산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조합 측 주장에 대해서도 "총회 당일 참석자를 배제한 채 서면결의서 제출자만을 대상으로 밥솥을 지급한 것은 결국 총회에 직접 참석하지 말 것을 유도하는 것"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합·시행사 위험부담 전가 주의"

이 사건에서 조합원들을 대리한 법무법인 화평의 최진환 변호사는 "시행사는 당초 지역주택조합사업을 하면서 주민들이 제공한 땅 면적만큼을 무상 또는 저렴한 가격에 아파트로 지어주겠다고 한 뒤 예상 외로 금융비용 등이 발생해 분담금을 더 내라고 주민들을 압박한다"며 "이번 사건도 조합과 시공사가 전문지식이 없는 조합원들을 이용,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총회 결의를 유도하려고 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지역주택조합사업은 실질적으로 시행사가 사업을 주도하면서도 일반 수분양자 지위에 가까운 조합원에게 사업주체라는 이유로 자신들이 져야 할 위험부담을 조합원들에게 전가하는 문제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주택개발사업 시 서면에 의한 의결권 행사는 조합원들이 사업에 참여하는 기회가 박탈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법무법인 남산의 양원석 변호사는 "일부 조합은 사전에 결의 내용을 찬성하는 내용으로 구성된 다수의 서면결의서를 받으면 총회 전에 이미 결의가 이뤄진 것과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이를 조합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생략하는 방법으로 악용하기도 하는 만큼 사업 진행절차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mountjo@fnnews.com조상희기자